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평양 전쟁 (문단 편집) == 군사력 == 미국, 일본 제국의 군사무기 생산력 비교 (1939-1945)[* 출처 : John Ellis, ''World War II: A Statistical Survey'' (New York: Facts on File, 1993), 277-80, [[http://mawarez.egloos.com/1365794|링크]]] || || 미합중국 || 일본 제국 || || [[전차]] 및 [[자주포]] || 88,410 || 2,515 || || [[야포]] || 257,390 || 13,350 || || [[박격포]] || 105,054 || 미공개 || || [[기관총]] || 2,679,840 || 380,000 || || [[트럭]] || 2,382,311 || 165,945 || || [[전투기]] || 99,950 || 33,405 || || [[폭격기]] || 97,810 || 15,117 || || [[수송기]] || 23,929 || 2,110 || || [[항공모함]][* 호위 항공모함 포함이다. 그러나 호위항모를 제외해도 정규 항공모함은 에식스급 항공모함 20척이 기본적으로 넘어간다. 일본군은 [[히요(항공모함)|여객선으로 건조 중이던 선박]]을 [[준요|항모로 개조한 것도 있다.]] 저 두 선박은 애초에 항공모함으로 개조할 것을 전제로 건조되었다.] || 141 || 18[* 처음 보유하고 있었던 9척은 제외한 수치이다.] || || [[전함]][* 이 수치에는 [[진주만 공습]] 때 파괴되었다가 수리해 복귀시킨 전함들은 제외되어 있다.] || 8 || 2 || || [[순양함]] || 48 || 9 || || [[구축함]] || 349 || 63 || || [[잠수함]] || 203 || 167 || [[파일:항공모함 취역2.png]] 태평양 전쟁 당시 취역한 미-일 항공모함의 평형. 보시다시피 격차가 어마어마하다.[* 호위항모가 5번 나오는데 4대라고 적혔다.] 일본 제국 측의 무기 생산량 중 미국과 조금이라도 비교해볼 여지가 있는 것은 전투기로, 미국 생산량의 76.36%에 달한다(잠수함은 82.27%). 하지만 폭격기와 수송기 등으로 항공기 생산 능력을 배분한 미군과 달리, 일본군은 사실상 전투기 하나에 올인하였음에도 미국의 76% 수준밖에 안 되는 것이다. 미군 전투기는 [[P-51 머스탱]], [[F4U 콜세어]], [[F6F 헬캣]], [[P-38 라이트닝]] 같은 전투기였고, 일본군은 초기부터 개량해서 운용한 [[제로센]]이다. [[제로센]]은 초반에는 우세하였지만, 중반부터 더 좋은 성능의 미군 전술기들이 등장하면서 종이비행기나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한 것으로도 모자라, [[카미카제|자살 돌격]] 전술로 수적인 우세마저 잃었다. 게다가 [[파일럿]]의 생존성을 조금이라도 더 높여야 하는 상황에 베테랑 조종사, 숙련된 조종사들이 소모되었다. 여기에 형편없는 공업력과 인력 부족으로 인해 보수, 수리뿐 아니라 전술기 양산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할 수준이었다. 물론 패전 때까지 제로센만 운용한 것은 아니라, [[시덴카이]]와 같은 신예기가 훌륭한 전과를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부족한 생산량 때문에 대규모로 편성하지도 못했다. 당시 [[일본]]은 전투기의 생산 속도와 생산 가능량이 세계적인 수준에서도 우세했다. 전투기 쪽에 올인하고 또 많이 써먹기도 했던 만큼, 초기에는 [[영국]]과 [[소련]]조차도 능가했으며, [[나치 독일]]이나 [[이탈리아 왕국]]보다도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천조국|세계 최강자]] [[미국]]이었다. 미국의 생산속도와 생산량에 비하면 일본은 새 발의 피, 아니 그 피의 [[적혈구]] 하나만도 못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본은 미국에게 끊임없이 전투기를 상실했다. 제로센은 속도와 선회력으로는 [[미군]] 전투기를 압도했지만, 미군 전투기에 비해 무전시설이 조악했다. 때문에 미군은 우수한 무전시설의 장점을 살려, 제로센 1대에 미군 전투기를 2~3대씩 붙여서 무전으로 끊임없이 서로 약점을 보완해주며 [[다구리]]치게 만드는 전술을 채택, 제로센을 하나씩 하나씩 격파해 나갔다. 전쟁 후반부에 들어서자 일본은 본토공습으로 인해 공장시설까지 상실하면서, 미국과의 격차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벌어지고 만다. 사실 대량으로 생산했어도, 일본에는 숙련된 조종사들이 부족해서 힘들었을 것이다. 이처럼 일본 제국이 올인하는 분야에서조차 생산량에서 미국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으며, 질적 차이는 더더욱 컸다. 전투기의 질적 차이는 그나마 약과인데 미국이 9만대 가까이 생산한 전차 및 자주포 상당수는 [[M4 셔먼]]이지만 겨우 2,500대 생산한 일본의 전차라는 물건은 [[치하]]가 대부분이었다. 미국이 1944년부터 양산한 M26 퍼싱 중형 전차는 44-45년간 생산량이 약 2,800대로, 대전 시기 일본 제국이 생산한 모든 전차, 자주포 총량보다 많았다.[* 사실 저 숫자도 [[독일 국방군|독일군]]을 얕본 [[미군]] 수뇌부에 의해 퍼싱의 본격 양산이 늦어져서 그런 거다.] 이러한 생산량의 격차는 전쟁 후반기로 갈수록 더욱 커졌다. [[일본 제국]]의 무책임한 징병 정책으로 숙련 기술공이 대부분 징집되면서 일본의 생산 능력은 떨어져만 갔고, [[미국]]의 무제한 잠수함전으로 남방에서 들어오는 원자재도 충분치 못했으며, 그나마 1944년 이후로 끊겼다. 1945년부터는 [[일본 본토 공습]]으로 그냥 공장들이 초토화되었다. 반면 [[미국]]은 본토가 안전하여 전시 산업 시설이 충분히 가동될 수 있었고, 숙련공도 넉넉했고, 이들을 징병하는 뻘짓 같은 건 하지도 않았다. 미국이 일본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유례없는 양면전쟁을 진행 중이었기에, 위의 물자가 모두 태평양에 집중되진 않았다는 것, 그리고 생산물자 상당수를 [[영국]], [[프랑스]], [[소련]] 등 동맹국에게 렌드리스로 퍼줬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실제 전차 및 자주포 생산량의 대부분은 [[유럽]]전선과 그 동맹국에 집중되었고, 태평양에 할당된 숫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이는 트럭이나 야포 같은 지상장비 전반에 공통되는 문제다. 하지만 태평양전쟁의 주 전장은 [[바다]]였고, 해군 전력의 90%는 태평양에 투입되었다. 그 10%도 절대다수가 U-Boat로부터 대서양 항로를 지키기 위한 구축함이고, 주력함들은 레인저 정도를 제외하면 잠깐 얼굴을 비춘 게 전부다. 그리고 이 장비들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석유]], [[석탄]], [[철강]]과 같은 연료 및 원자재의 생산량, 수송 능력의 격차도 매우 컸다. 특히 일본은 워낙에 철이 모자라서 [[경북선]] 등 [[한반도]]에서 장사 안 되는 [[철도]]를 죄다 뜯어가버리고, [[통영대전고속도로]]의 모체가 된 대전-삼천포 철도노선 공사를 중단시키는 등의 막장스런 모습도 보여주었다. 식민지 조선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고, 일본 본토에서도 [[절(불교)|절]]이란 절은 다 돌아다니며 [[종(악기)|종]]들을 떼가질 않나, '''"[[동전]] 따위 만드는데 쓸 [[금속]]은 없다"'''며 1944년에는 [[엔화]]보다 아래 단위인 5전, 10전을 주화가 아닌 [[지폐]]로 발행했다. 전쟁을 벌이면서 무기 등을 제작하기 위한 철이 모자라다는 것 자체가, 암담한 전황을 나타낸다. 사실 일본은 옛날 옛적부터 철이 부족한 국가였고, 산업화를 하면서도 이는 해결되지 않았다.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까지 일본은 고급 강철은 사실상 전량수입, 프라이팬 만드는 수준의 선철조차 과반을 수입했다. 강철을 만들 기술은 있었는데 워낙 생산성이 떨어지고, 선철산업은 좀 육성해보나 했더니 대공황이 터지며 싹 망해버려서...그나마 조선과 만주에서 철광과 제철소를 만들고, 소련에서 강철을 수입하고, 영국령 인도에서 선철, 미국에서 고철을 수입하는 게 중일전쟁기 일본이었는데, 일본은 시원하게 그 모두와 전쟁을 벌인다(...) 이들 원자재 대부분을 [[식민지]]와 남방 점령지에서 조달하던 일본 제국은, 해상교통로가 차단되자마자 바로 산업 능력과 전투력 유지에 위기가 닥쳤다. 일본이 원유를 공급받던 유전은 [[팔렘방]]과 [[브루나이]], [[쿠칭]] 등에 있었는데 [[미국]]은 전쟁 후반에 브루나이, 쿠칭 유전 지대에 상륙했고, [[영국]]은 [[코코스 제도]]에서 전투기를 띄워 계속해서 팔렘방을 두들겼다.[* [[팔렘방]] 방공전에는 [[대한민국 공군]] 건군의 주역 중 한 명인 [[김정렬(1917)|김정렬]]이 일본군 소속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일본은 안심하고 [[석유]]를 퍼올 곳이 하나도 없었다. 극심한 석유난으로 인해, 전쟁 막바지에는 [[소나무]]에서 뽑아낸 [[송근유]]를 동원하여 전투기를 가동하려 했을 정도였다[* 정작 우스운 것은 그렇게 송근유를 악착같이 만들고도 별로 사용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송근유의 품질 자체가 워낙 나쁘기도 했지만, 일본이 사용할 기계에 들어가는 석유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일본 영토 전체에 있는 소나무를 모조리 송근유로 뽑아가도 양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그 밖에도 당시 일본 제국은 세계 최대의 [[텅스텐]] 산출국([[일제강점기|식민지 조선]]의 상동광산[* [[강원도]] [[영월군]]])이었으나, 텅스텐을 제대로 활용할 기술력이 없었다. 텅스텐은 포탄용으로 사용되는 자원인데, 일본 제국은 텅스텐 가공 기술이 부족해서 조선의 텅스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같은 시기 동맹국 [[나치 독일]]은 고철더미를 뒤져가며 텅스텐 재활용을 하고 있었다. [[이베리아 반도]]의 두 중립국에게서 수입을 해오긴 했는데, [[독소전쟁|동부전선]]에서 소모하는 포탄의 양이 워낙 대규모다 보니 수입 물량으로는 도저히 요구량을 맞출 수 없었다. [[미국]]은 자원의 부족을 우수한 산업 능력으로 해결했다. 개전 초 [[동남아시아]]가 일본에 넘어가면서 미국도 여러 가지 천연자원들, 특히 천연[[고무]]의 부족에 시달렸다. 이는 바퀴 달린 모든 것들의 생산에 지장을 초래했기에, 개전 초에는 미국도 전 민간에서 안 쓰는 폐타이어 등을 회수하는 식으로 고무를 충당했는데, 나중에는 합성고무를 만들어서 천연고무를 완전히 대체해 버렸다. 나머지 자원인 [[석유]], [[석탄]], [[철강]] 등이야 미국뿐만 아니라 가장 가까운 동맹국 [[캐나다]]에서도 쏟아지는 것들이었다. 이런 전략자원 레벨은 아니지만 [[DDT]] 역시 [[동남아시아]]에서 수출하는 살충제 원료인 제충국을 입수하지 못하게 되자 미국이 산업 능력으로 생산한 화학 살충제였다. 이런 직접적인 전투 장비(무기) 및 전략자원 문제 말고도, 양국의 산업력과 기술력의 차이는 이 전쟁에 크게 작용했다. 사실 애초에 [[일본]]이 [[영국]], [[미국]] 등 다른 선진국들에 과학기술을 의존하고 있던 현실[* 그래서 그 지원이 끊어진 초반에는 전차, 전투기 등도 의외로 그렇게까지 밀리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격차가 벌어지게 되었다.]도 있었다. 당장 전황이 아직 불리하지 않던 개전 초인 1942년에는, [[알류샨 열도 전역]]을 위해 '''자국의 [[고양이]]들을 죄다 공출해서 방한복 만드는 소재로 사용'''([[https://twitter.com/debirth/status/1159812443641503744?s=09|#]])할 정도로, 일본은 전 분야에서 기술력, 산업력, 자원보유량 모두 압도적 열세였다. 고양이 1마리 잡는다고 모피가 얼마나 나오겠는가? 또 다른 예로 [[불도저]]가 있다. 일본은 전쟁 기간 내내 인력을 동원해 [[삽]]과 [[곡괭이]]로 [[활주로]]를 만들었다. 막대한 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당연지사. 반면 [[미군]]은 불도저를 이용하여 단시간에 활주로를 뚝딱 만들어냈다. [[과달카날]]에서도, [[알류샨 열도]]에서도, 전쟁 후반기 [[괌]]과 [[사이판]], [[이오지마]]와 [[오키나와]]에서도 말이다. 일본 제국은 전쟁 초기 노획한 불도저를 본국으로 가져간 후 그 효율성에 주목하여 고마쓰 중공업에서 카피해내긴 했으나, 성능이 제대로 안 나오고, 수량 또한 턱없이 부족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